상세정보
우리에겐 논쟁이 필요하다 - 우리를 분열시키는 이슈에 대해 말하는 법

우리에겐 논쟁이 필요하다 - 우리를 분열시키는 이슈에 대해 말하는 법

저자
아리안 샤비시 지음, 이세진 옮김
출판사
교양인
출판일
2024-05-21
등록일
2024-09-06
파일포맷
EPUB
파일크기
17MB
공급사
알라딘
지원기기
PC PHONE TABLET 프로그램 수동설치 뷰어프로그램 설치 안내
현황
  • 보유 1
  • 대출 0
  • 예약 0

책소개

우리에겐 더 강력한 논리가 필요하다!

우리를 분열시키는
기만의 언어를 뚫고 나가는
과감하고 날카롭고 통찰력 있는 사유!


분열의 언어와 가짜 논리가 미디어와 SNS를 뒤덮었다. 보수 정치인들이 내뱉는 ‘자유’ ‘공정’ ‘불법과 합법’ 같은 말들은 겉보기엔 흠잡을 데 없어 보이지만 조금만 깊이 들여다보면 차별과 배제를 선동하는 은밀한 ‘이중 언어’임이 드러난다. 전 세계를 휩쓴 ‘흑인의 생명도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 운동에 맞서, ‘모든 생명은 소중하다(All Lives Matter)’고 외치는 것은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듯 보이지만 그 내용을 보면 인종차별의 현실을 은폐하는 가짜 논리라는 사실이 분명해진다. 기후 위기 시대에 대중화된 ‘탄소 발자국’은 어떤가? 수많은 양심적 소비자들을 죄의식에 빠뜨린 이 말은 글로벌 석유 회사가 자본의 책임을 개인에게 떠넘기려고 만들어낸 기만적인 표어였다! 여성들을 무참히 죽이는 남성 폭력을 고발하는 ‘남자는 쓰레기다’ 해시태그 운동에 남성혐오라는 비난이 들끓었다. 남자는 다 쓰레기라고? 그러나 ‘남자는 쓰레기다’라는 총칭적 일반화는 남성 폭력 문화를 겨냥하는 정당한 언어임이 이 책을 통해 논리적으로 선명하게 밝혀진다.
기득권 세력은 편견과 혐오를 조장하고 분열을 유도함으로써 저항 세력을 무력화하려 한다. 이 책은 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 ‘문화 전쟁’의 최전선에서 철학적 분석과 논리적 반박이 어떻게 진실을 꿰뚫어보고 세상을 바꿀 수 있는지 이야기하는 차갑고도 뜨거운 목소리다. 저자 아리안 샤비시는 ‘비판적 탐구’라는 철학의 정신에 입각해 성차별, 인종차별, 정치적 올바름(PC), 도그휘슬(dog whistle), 구조적 불평등을 비롯한 오늘날 가장 첨예하게 충돌하는 정치적 주제들을 날카롭게 분석하고 그 핵심을 파고들어 전복적으로 해석한다. 이 책은 공론의 장을 점점 더 위협하는 언어 양극화의 현실에 맞서 저항의 언어를 벼리고 변화를 이끌어내는, 과감하고 날카롭고 통찰력 있는 논리적 사유의 현장이다.

‘문화 전쟁’ 최전선에서 벼리는 저항의 언어

저항의 언어는 언제나 위태롭다. 억압과 분열의 언어에 맞서 싸우는 말들은 그 본의가 쉽게 왜곡-과장되거나 흔히 말꼬리 잡기식 공세에 시달린다. 논점은 이탈되고 흠집 잡기가 시작된다. \'말이 너무 지나친 거 아니야?\' \'이러다간 아무 말도 못 하겠네!\' 차별이나 혐오가 직접 언급되기보다는 그들끼리의 언어로 암호화되어 은밀히 퍼지기도 한다. 이러한 속임수 탓에 문제를 지적하기조차 쉽지 않을뿐더러 지적하더라도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가 오히려 예민한 사람, 농담에 죽자고 달려드는 사람 취급받기 일쑤다. \'지나치게 의미 부여하는 거야.\' \'피해망상이야.\' 우리의 해방의 언어가 세상을 바꾸기도 전에 무너지고 주저앉지 않으려면 우리는 어떻게 말하고 어떻게 싸워야 할까?
(우리에겐 논쟁이 필요하다)는 우리 일상을 에워싸고 있는 ‘문화 전쟁’에 대한 철학적 해부이자 차별과 혐오에 맞서 목소리를 내고 싶은 이들을 위한 논리적 안내서다. 아리안 샤비시는 철학 교수로서 숱한 토론 수업을 진행하며 학생들에게 받았던 질문들과 사회적-정치적 현안과 관련해 언론 매체에 꾸준히 글을 쓰며 받았던 피드백들을 포함해, 깊이 있는 철학적 지식과 일상에서 건져 올린 풍요로운 사례들을 이 한 권의 책에 모두 녹여 냈다. 샤비시는 역차별 논란, ‘지나친’ 정치적 올바름, 표현의 자유 제한, 기후 위기의 책임 문제 등 오늘날 가장 논쟁적인 이슈들 속으로 들어가, 냉철하게 분석함으로써 논쟁의 장 자체를 뒤흔들고 전복한다. 어떤 문제가 의제화되고 어떤 사실이 은폐되는가. 어떤 개념과 논리가 시선을 끌고 논란을 야기하는가. 샤비시는 논쟁의 배후를 날카롭게 해부함으로써 권력의 언어가 작동하는 방식을 교차성, 총칭적 일반화, 인식적 불의를 비롯한 철학의 도구를 사용해 명료하게 밝혀낸다.

‘남자는 쓰레기다’라고 말하면 성차별인가?
2017년 소셜미디어를 뜨겁게 달군 ‘남자는 쓰레기다’ 해시태그 운동은 사회 전반에 만연한 남성의 강간-폭력 문화를 폭로했다. 그러나 곧바로 문제 없는 ‘평범한’ 남자들까지 싸잡아 욕한다는 거센 비난을 받았고 ‘모든 남자가 그렇지는 않다’라는 반발에 직면했다. 논의의 중심을 문제 있는 남성에서 문제 없는 남성으로 교묘하게 옮기는 전형적인 논점 이탈이자 주의 흐리기 전략이었다. ‘남자는 쓰레기다’가 ‘혐오 표현’이라면 ‘어떤 남자는 쓰레기다’라고 고쳐 말해야 하는 걸까? ‘남자는 쓰레기다’라는 말은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를 범하고 있는가?

암호화된 혐오 ‘도그휘슬’, 감춰진 혐오 ‘무화과잎’
‘도그휘슬’과 ‘무화과잎’은 차별과 배제를 선동하는 이들이 취하는 간접적인 말하기 방식인데, 타인의 정치적 견해를 은밀히 조종하는 힘을 갖고 있다. ‘도그휘슬’은 언뜻 평범한 말처럼 들리지만 특정한 사람들만 알아듣게끔 정치적 메시지를 암호화하는 것을 뜻한다. 보수 정치인들이 ‘자유’를 거듭 강조함으로써 사회주의적 가치를 표방하는 세력을 배제한다는 신호를 보내거나 ‘불법 시위’라는 말로 집회의 당사자들을 범죄자 취급하는 식이다. 한편 ‘무화과잎’은 \'나는 인종차별주의자는 아니지만-\' \'나는 이슬람 친구가 많지만-\' 하고 덧붙이는 말인데, 자기 발언에 담긴 공격성을 은폐하거나 주의를 딴 데로 돌리는 교묘한 술수다. 이들은 혐오의 말을 내뱉으면서도 뻔뻔하게도 혐오주의자라는 혐의는 피하려 한다.

‘모든 생명은 소중하다’라는 말은 왜 문제적인가?
2020년 백인 경찰의 과격한 진압으로 인해 비무장한 조지 플로이드라는 흑인 남성이 사망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이 사건을 계기로 미국 전역에서 ‘흑인의 생명도 소중하다’ 시위가 거세게 일었고, 그 영향은 전 세계로 퍼져 반(反)흑인 인종차별 철폐 운동이 잇따랐다. 반면 ‘흑인의 생명도 소중하다’ 운동이 점차 힘을 얻자, 이 구호에 반대하는 이들이 나타나 ‘모든 생명은 소중하다’고 외치기 시작했다. 그들 중 일부는 이미 인종차별은 극복되었고 우리가 ‘탈인종주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기에 피부색을 따지는 것이 오히려 분열을 자초한다고 말한다. 또 다른 이들은 ‘흑인의 생명도 소중하다’는 구호는 사실상 다른 생명, 특히 백인의 생명이 소중하지 않다는 뜻을 내포한다고 주장했다. 왜 백인들은 ‘흑인의 생명도 소중하다’라는 말 속에서 백인에 대한 배척을 읽어내는 것일까? ‘모든 생명은 소중하다’가 담고 있는 함의는 무엇일까?

‘정치적 올바름’은 좌파의 독단주의인가?
‘정치적 올바름’은 흑인, 여성, 장애인을 비롯한 사회적 소수자를 향한 혐오 표현과 차별 행동을 적극적으로 거부하는 정치적 행동을 가리킨다. 대표적으로 영어에서 흑인을 비하하는 ‘검둥이’라는 뜻의 인종차별적 비방인 ‘니그로(Negro)’, ‘니거(Nigger)’라는 단어를 피하기 위해 ‘N단어’로 지칭할 것을 요구하는 것이다. 이에 보수주의자들은 진보주의자들의 ‘과도한’ PC주의가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고 문화 전반을 경색시키는 ‘독단주의’라고 비판한다. ‘정치적 올바름’은 \'군중의 광기\'(더글러스 머리), \'좌파의 집단주의\'(조던 피터슨)로 치부되기도 한다. 그러나 모든 종류의 표현이 자유로워야 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또한 혐오 표현을 막는 금기어를 늘린다고 해서 문화 전체가 경색되고 전체주의로 흐를 것이라는 주장이야말로 지나친 비약이자 논리적 오류(미끄러운 비탈길 오류)에 해당한다.

불신당하는 여성의 말
여성과 유색인종의 말은 왜 자꾸 의심받는 걸까? 신뢰에는 인종과 젠더에 따른 분명한 차이가 있다! 특정 집단은 지나치게 신뢰받고(신뢰 과잉) 다른 집단은 툭하면 의심받는다(신뢰 결여). 신뢰받는다는 것은 인격적으로 존중받고 사회적으로 성공할 가능성을 키우지만, 반대로 불신받는다는 것은 자신이 살아가는 공동체의 온전한 구성원으로 인정받지 못한다는 뜻이다. 우리 사회는 신뢰를 배분하는 방식을 근본부터 제대로 돌아봐야 한다. 특정 집단만 무비판적으로 믿어서는 안 되며, 우리가 이미 그들에게 무비판적으로 신뢰를 내어주고 있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탄소 발자국’이라는 사기극
개인이 직‧간접적으로 발생시키는 이산화탄소 총량을 가리키는 ‘탄소 발자국’ 개념은 기후 위기 시대에 환경적 정의에 관심 있는 사람들의 죄책감을 자극했다. 그 수치에 따라 자가운전 대신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육류 소비를 줄이고 채식을 지향하며 찬물로 세탁하는 일에 사람들이 점점 마음을 쓰기 시작했다. 그러나 사실 ‘탄소 발자국’ 개념은 구조의 결함을 개인의 책임으로 떠넘기기 위해 글로벌 석유 회사가 의도적으로 대중화시킨 것이다. 공정 무역 커피, 친환경 세제, 자선 단체 기부와 마찬가지로 개인의 죄의식을 자극해 사회적 시스템의 결함을 가리면서, 동시에 새로운 시장을 창조한 지극히 자본주의적인 마케팅이었다. 하지만 개인이 끼치는 기여가 미미하고 지배적 구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이유로 기후나 빈곤 문제에서 개인의 책임 없다고 말할 수 있을까? 불평등한 구조에서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한줄평

전체 0건(0/0 페이지)
번호 별점 한줄평 작성자 작성일 추천수
등록된 한줄평이 없습니다.
연관도서 연관도서를 소개해드립니다!
저자동일
함께 대출한 도서

    이 책을 대출한 회원이 함께 대출한 컨텐츠가 없습니다.

QUICKSERVICE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