왈츠는 나와 함께
삶에 대한 절박함을 내뿜는
폭발적 스타일리스트
젤다 피츠제럴드의 유일한 장편소설. 국내 첫 출간. 젤다는 스콧 피츠제럴드를 망친 정신이상자 아내에서 스콧의 과도한 통제로 희생된, ‘좌절된 여성의 예술성’을 상징하며 1970년대 페미니즘 물결의 아이콘으로, 오늘날에는 ‘재즈 시대’를 대표하는 작가가 되었다. (왈츠는 나와 함께)는 프로 발레리나를 꿈꾸는 ‘앨라배마’의 분투기를 다룬 작품으로 정신병원에서 육 주 만에 써냈다. 실제 젤다가 프로 발레리나를 꿈꿨다는 점에서 젤다의 삶과도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데, 신해욱 시인은 이 작품을 두고 \'발레 그 자체\'라고 말하기도 했다. 젤다는 \'거인 같은 기분\'과 ‘석 달 만에 유산되어 나온 태아 같은 기분’을 오가는 엄청난 감정의 낙폭 속에서도 이 소설을 또렷한 집중력으로 완성한 뒤 이렇게 말했다. \'나는 내 소설이 자랑스러워.\' (왈츠는 나와 함께)의 출간을 둘러싸고 젤다가 스콧에게, 스콧이 편집자에게 보냈던 편지를 수록했고, 핍진한 현실 묘사와 은근한 에너지를 주는 소설로 정평이 난 소설가이자 번역가 최민우가 금방이라도 터질 듯한 젤다의 저력 있는 문장을 꼼꼼하고 끈덕지게 옮겼다.
‘상황에 갇힌 여성’이 아니었던
발레리나의 우아한 투쟁
\'한때 나 자신이었던 깊은 저수지\'를 바닥까지 긁어내면서 되고 싶은 미래를 퍼 올리는 앨라배마를 통해 ‘상황에 갇힌 여성’이 아니고자 했던 젤다의 절박함까지 전달한다. 앨라배마의 남편 ‘데이비드’는 \'앨라배마를 마치 자기가 그린 그림인 양 친구들에게 전시\'하고, 앨라배마는 \'세상에 내보일 게 아무것도\' 없다고 느끼는데, 이때 찾아온 것이 바로 발레였다.
앨라배마는 러시아 출신 유명 발레리나에게 지도받으며 연습에 몰두한다. 몸을 혹사하고, 딸과 많은 시간을 보내지 못하는 데 대한 부채감을 떠안고, 남편이 있는데 왜 발레를 배우느냐는 어린 발레리나들의 조롱까지 견디면서 연습에 매달린 덕분에 나폴리의 산카를로 오페라 극장 발레단에서 입단 제의를 받는다. 여기서 ‘앨라배마’의 이름을 ‘젤다’로 바꾸어도 이야기는 성립된다. 실제로 젤다는 프로 발레리나가 되려고 세계적인 무용수에게 수업을 들었고, 수업료를 내기 위해 작품을 발표하는 등 강박적으로 분투했다. 현실의 젤다는 끝내 입단을 포기한다. 이와 비교해 소설 속 앨라배마의 선택을 지켜보는 일도 흥미롭다.
해설에서 최민우 번역가는 (왈츠는 나와 함께)를 두고 \'희망과 낭만과 환멸 사이를 언제 바퀴가 빠질지 모를 자동차처럼 덜컹거리며\' 오간다고 말한다. 주인공 앨라배마 또한 \'연습실과 삶을 분리\'하지 않으면 삶의 한쪽이 다른 쪽보다 불만족스러워질 테고, 이내 \'목적도 없고 방향도 보이지 않는 흐름\' 속에서 길을 잃고 말 거라고 토로한다. (뉴욕 타임스)의 전설적인 서평가 미치코 가쿠타니 역시 \'자신만이 가진 무언가를 성공시키고자 하는 영웅적인 절박함을 전달하는 데 성공\'한 작품이라고 (왈츠는 나와 함께)를 평했다.
앨라배마가 발레에 매달릴수록 발레 역시 그에게 매달렸다. 앨라배마는 깨닫게 된다. \'내가 여기 오지 않았다면 내게 주어진 시간은 텅 빈 채로 나를 기다리고 있었겠구나\' 하는 사실을. 이때 독자가 목격하는 것은 한 발레리나의 가장 우아하고 높은 점프다.
하지만 저는 발레에서 태어났는걸요.(227쪽)
유실된 (왈츠는 나와 함께)의 초고
이를 둘러싼 편지들
스콧은 젤다가 (왈츠는 나와 함께)의 초고를 자신의 ‘허락’ 없이 편집자에게 보낸 것을 알고 분노한다. 젤다는 스콧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집필 중인 걸 알고 있어 방해하고 싶지 않았고, 편집자의 의견을 들은 뒤 퇴고할 계획이었다고 말하지만 스콧은 편지 여백에 \'이건 핑계임\'이라고 적었다. 이어지는 편지에서 젤다는 내밀한 열망과 현재 상태를 암시한다. 현재 심리적으로 불안정하며 스콧이 예전에 자신의 단편들에 가했던 \'혹독한 비평을 듣고 싶지\' 않고 \'이미 충분히, 차고 넘치게 낙담\'해서 자신이 \'하는 모든 일에서 맴도는 무력감 때문에 비명이라도 지르고 싶은 심정\'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편지 끝에는 다시 한번 \'소설을 먼저 보내지 않은 건 당신에게 의지할 생각이 없어서가\' 아니라고 강조하면서 스콧의 기분을 살핀다.
하지만 스콧은 편집자에게 \'젤다의 소설을 검토하지 말아줄 것. 아직 안 했다면 수정본을 받을 때까지는 고려도 하지 말 것\'이라는 냉정한 편지를 보내고 젤다에게 수정을 요구했다. 스콧은 집필 중이던 (밤은 부드러워)와 (왈츠는 나와 함께)의 소재가 겹친다고 생각했는데, 젤다는 \'같은 소재를 다뤘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있긴 하지만 결코 ‘도용’이 아니며 이런 소재들을 모으는데 자신이 겪은 정서적 스트레스 또한 상당하다고 항변했다. 그리고 수정을 한다고 해도 자신의 미학적 기준에 따를 것임을 분명히 밝혔다. 이처럼 젤다가 앨라배마를 통해 보여주고자 했던, 스스로에게도 주문처럼 요구하려 했던, 자기 자신으로 살고자 하는 열망이 (왈츠는 나와 함께)에는 가득 담겨 있다. \'나는 진짜로, 진심으로, 어떻게든 내 영혼에 대한 대가를 받고 싶어\'라고 말하는 앨라배마의 대사는 젤다의 그것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종국에는 스콧도 (왈츠는 나와 함께)를 ‘정확하게’ 바라본 최초의 인물이 되어 \'강한 개성이 드러나는\' \'정말 좋은 소설\'임을 인정한다.
\'밤이면 앨라배마는 지쳐서 꼼짝도 못 한 채 창가에 앉아 무용수로 성공하겠다는 열망에 사로잡히곤 했다. (--) 스스로를 입증함으로써 오로지 자신에 대한 확신 속에서나 상상할 수 있던 평화를 얻을 것 같았고, 춤이라는 수단을 통해 감정을 통제하고 사랑이나 연민이나 행복을 뜻대로 불러낼 수 있으며 그러한 감정들이 흐를 통로를 마련할 수 있을 것 같았다.\'(251쪽)
여전히 기다린다
절박함에 감응할 수 있는 친구를
(위대한 개츠비)에는 \'다시 젤다에게\'라는 헌사가 있지만 (왈츠는 나와 함께)에는 젤다의 주치의였던 \'밀드러드 스콰이어스에게\'라는 헌사가 적혀 있다. 당시 두 사람이 주고받은 편지를 보면 젤다는 스콧에게 끊임없는 애정을 드러냈고 스콧도 적어도 겉으로는 아내인 젤다를 꾸준히 사랑한 것으로 보이지만, 어쩌면 젤다는 기다렸는지도 모른다. 병원 화재로 삶을 비극적으로 마감할 때까지, 그 이후에도 활자로 고정되어 \'세월에 빛이 바래 가는 희망이 자아내는 애수\'를 풍기면서까지, 자신과 자신의 작품을 온전히 알아봐줄 친구를. \'이 절박함에 감응할 수 있는\' 친구를. 요동치는 감정 속에서도 편지에 꾹꾹 눌러쓴, \'내 소설이 자랑스러워\'처럼 \'네 소설이 자랑스러워\'라는 답장을 보내줄 친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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