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 용혜
외양과 내면
[괴물, 용혜』의 등장인물들은 강렬하다. 겉으로 드러난 모습과 속으로 감춘 모습 사이의 간극이 상당해서, 그 대비가 깊은 인상을 남기는 것이다. 여덟 살 딸아이의 유괴를 방조하기 위해 행동에 나서는 현기와 은옥은 지역 사회에서 봉사활동으로 유명한 목사 부부다. 그들의 냉대를 힘없이 받아들이던 딸 희영이는 참극의 현장에서 홀로 살아남아 미소 짓는다. 실종 수사 업무에 열의를 보이는 성실한 경찰 용혜는 더없이 반사회적인 식성의 소유자다. 뇌물이 담긴 두툼한 봉투를 일언지하에 거절했던 전직 경찰 재현은 날카로운 눈빛으로 가혹한 취조를 일삼는다. 그 외의 사람들도, 어떠한 인물이라 한마디로 표현하기 힘들 만큼 입체적이다.
이들은 모두 기묘한 붉은 반점과 얽혀 있다. 주인공 용혜를 비롯한 몇몇 사람들의 온몸을 뒤덮고 있는 이 반점은 살아 있는 생물처럼 스스로 움직인다. 부풀어 오르다가 가라앉고, 크기가 커졌다가 줄어든다. 신체가 성장함에 따라 붉은 반점도 함께 자라나기에 용혜는 10년 뒤엔 몸 전체가 붉은 반점으로 뒤덮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붉은 반점을 목격한 이들은 그것이 괴물의 표식이라고 말하는데, 이야기가 전개될수록 그렇게 단정하기는 어렵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등장인물들이 그러하듯이 붉은 반점 또한 입체적인 존재다.
은폐와 폭로
용혜는 학창 시절 체육복으로 갈아입을 때마다 반점이 드러날까 봐 조심스러워했다. 붉은 반점의 소유자 중에는 봄이 왔는데도 장갑을 끼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기란 불가능하다. 붉은 반점을 본 사람들은 그 점이 전염병의 증상이라 여기고, 두려움은 이내 혐오감으로 번진다. 붉은 반점을 가진 이들은 결국 무리 밖으로 내쫓긴다. 이들의 또 다른 공통점은 사회적으로 용인되기 힘든 식성을 가졌다는 것인데, 특이한 먹거리를 원할 뿐 인간성을 잃지는 않았기에 자신의 식성을 그대로 내보이려 하지 않는다. 비인간적인 면모를 애써 감추거나 아예 사람들로부터 숨는 길을 택한다.
한편에는 이들이 숨기려는 것을 폭로하려는 자들이 있다. 한 공장에서 일하는 여러 사람의 몸에 붉은 반점이 생기자, 그들의 상사는 ‘공장에 괴물들이 살고 있다’며 소문을 낸다. 그 공장에서 벌어진 다른 사건을 수습하러 왔던 경찰은 소문을 듣고 직접 조사에 나섰다가 ‘괴물들’의 오랜 추적자가 된다. 그의 의뢰를 받은 다큐멘터리 감독은 붉은 반점을 가진 이들을 향해 카메라를 들이민다. 그들은 자신이 비범하다 여기며, 붉은 반점의 존재를 널리 알리는 일이 자신의 영달에 도움이 될 것이라 믿는다.
괴물과 인간
그렇다면, 누가 괴물인가? 괴물성이란 무엇인가? 작중에는 괴물이 왜 생겨났는지, 괴물은 어떤 존재인지에 대한 여러 견해가 등장한다. 수많은 인물에게서 다양한 양상으로 드러나는 괴물성과 인간성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저 질문에 답하기가 점점 어려워진다. 명쾌한 결론이 나오지 않는 문제를 붙잡고 있다 보면 어느 순간 깨닫게 된다. 그 모호함이 곧 현실의 모습이라는 것을.
현실을 닮은 이 이야기는 실제 세상에 존재하는 괴물, 우리의 안에도 존재하고 있는 괴물을 비춘다. 살아 움직이는 붉은 반점을 지니고 있지 않더라도, 불안과 고통에 짓눌리다 어느 순간 선을 넘어 버린 경험이 있다면 ‘우리는 불안과 고통을 안고서 괴물과 인간의 경계 위에 선 채로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작가의 말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무자비한 세상은 인간답게만 살고픈 마음을 수시로 뒤흔든다. 부디 우리 모두,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다울 수 있기를. 용기와 지혜를 품고서 끝까지 분투하는 용혜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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