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함 제2권
이 소설은 1960년대 우리 해군들의 생활상을 주제로 한 바다 이야기다.
이 소설의 시대적 배경은 1964년부터 1967년까지이며 1967년 1월 19일 동해에서 교전 중 침몰된 당포함(56함) 전몰장병들의 사랑과 우정, 한미상호방위조약과 국군 작전지휘권 문제, 인천/목포/진해/부산 등지의 항구 정경과 그 시절 젊은이들의 꿈과 욕망 등을 소재로 하여 그려본 소설가 서동익의 첫번째 해양 장편소설이다.
이 소설이 내게 왔을 때 두 가지 점에서 나의 주목을 요하고 있었다. 하나는 이 소설이 보기 드물게 해군들의 생활상을 그리고 있다는 점이다. 저 아득한 천 년 전 장보고가태평양의 북단을 장악하고 동아시아를 주름잡던 시절이나 이순신이 거북선을 지휘하며 해전 역사상 유례없는 전공을 올리던 임진왜란 때를 떠올리면서 바다와 친숙했던 우리의 역사를 고려하거나 하지 않아도 좋다. 다만 세계 군사상의요충지인 한반도의 영해를 지킨 우리 시대 해군들의 역할이나 숫자가 만만찮은 범위를 차지하는 것이라는 손쉬운 느낌만으로도 그들의 이야기가 문학의 중심에 들어와 있지 않은 현실을 충분히 안타깝게 여길 수 있는 것이다. 이는 가령 최근에 한 연구가의 집요한 노력으로 고대로부터 최근에 이르는 바다를 주된 소재로 한 문학 작품들을 한 자리에 모은 뜻 깊은 책 한국해양문학선 (최영호 읽음 /한국경제신문사 1995)에마저도 수군들이나 해군들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다룬 소설이 한 편도 실려 있지 않은 것으로 봐서도 그 실 태를 짐작할 만한 일이 된다. 더구나 그들 해군들이 한번 출항하면 망망대해밖에 바라볼 것이 없는 배 안에서 젊음을 불사를 다른 방도를 찾지 못하는 20대 초중반의 사내라는 점에서 참으로 묘사할 사연도 많을 법한데도 도무지 우리 문학은 그에 답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서동익의 소설 퇴함이 바로 우리 시대 해군들의 젊음의 제한과 폭발 사랑의 배신과 정열 그리고 바다에서의 장렬한 최후 등을 그려 보이고 있다. 이 소설에서 강철규가 바로 그 해군들의 생활을 대변해주는 주인공 역할을 맡아 몸소 그 젊음과 사랑과 죽음의 통로를 걸어간다. 다음과 같은 대목은 강철규가 겪고 있는 해군 생활의 한 단면적인 모습이다. 밀폐된 격실과 다름없는 배 위에서 여자의 그림자도 못 본 채 계속 배멀미와 파도에 시달리며 똑같은 생활을 20일 정도 반복하다 보니까 밥맛도 떨어지면서 대수롭지도 않은 일로 아랫사람들을 집합시켜 놓고 개 패듯 몽둥이를 휘둘러대면서 신경질을 부린 자신의 행각이 믿어지지 않았다. 또 40여 일이 지나면서부터는 그마저 눈 맞는 동기생과 함께 안전당직실로 들어가 출입문을 잠가놓고 주거니 받거니 하며 비역질이라도 하고 싶어 못 견뎌 한 자신 앞에 그는 혀를 깨물고 말았다. 성욕과 스트레스가 오랜 기간 해소되지 않은데다 바다가 매일같이 인간의 두개골을 흔들어 대니까 승조원 전체가 자신도 모르게 정신의학적으로 조울상태(조울狀態)에 빠져드는 생리현상 때문이라는 걸 그때사 비로소 알았던 것이다. 이런 생리현상이 극도로 악화되면 새까만 수병들마저 보수도끼를 빼들고 자신을 괴롭힌 선임자들을 죽이겠다며 상상을 초월할 만큼 포악해지기도 했다. 다음 이 소설이 남달리 내 주목을 요구한 것의 다른 하나는 이 해군들 이야기 속에 남북한이 적대관계로 대치하고 있는 지난 40여 년 동안 군사작전권을 가지지 못하고 있던 남한 체제의 비극을 설명하고 있다는 점이다. 바로 한미상호방위조약에 따라 남한의 영토를 침범해 위협을 가하는 정도의 위급한 상황에서조차도 미군의 재가(裁可) 없이 총질을 할 수 없는 처지가 우리의 현실이었다. 미군에 군사적으로 예속된 이러한 한국의 체제적 모순을 이 소설은 1967년 1월19일에 있었던 56함 침몰 사건이라는 실제 일을 모델로 해서 777함 침몰 사건으로 꾸며 보여준다. 한국 어선을 나포해가다 쫓기게 된 북한의 경비정에게 발포할 수 없는 현실을 눈앞에 당하고도 분통만 터뜨리고 있을 수밖에 없는 주인공 강철규의 내면을 잠시 엿봄으로써 한미상호방위조약이 낳은 한국군의 예속적인 상황을 짐작해보자. 함장이 피가 마르도록 기다리는 발포명령은 지금 어디쯤 오고 있을까? 아니 어쩌면 아직도 미 국방성이나 워싱턴 D.C. 쯤에서 머물고 있지는 않을까? 담당 결재자가 갑자기 무슨 일이 생겨 자리를 비우고 있을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철규는 덩달아 피가 마르는 느낌이었다. 작전관의 건의처럼 우리는 분명히 국민의 재산과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 일련의 조치를 취해야 하는데 이것을 미국의 동의없이 우리의 독자적 판단에 의거해 선처리(先處理)해 버리면 결과는 한반도 안정과 미국의 동북아시아 정책에 삿대질을 하는 격이 되어 한미상호방위조약이 자동적으로 파기되어 버리는 것이다. 빌어먹을……. 결국 한미상호방위조약은 미국의 국가적 이익을 우선하는 조약이지 우리의 국가적 이익을 우선하는 조약이 아닌 것이다. 미국의 달라스 장관과 축배의 잔을 높이 든 변영태 장관은 이런 피를 말리는 순간의 고통들을 예상이나 하면서 한미상호방위조약에다 서명했을까? 변영태 장관은 남달리 영어도 잘했고 이승만 대통령의 권한을 위임받은 일국의 장관이었으니까 물론 이런 고통쯤은 예상했었겠지…… 그러면서도 그 당시는 어철 수 없어서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서명했었겠지……. 그러나 빌어먹을 이 조약은 강자의 비위를 맞추는 독소 조항들이 너무 많아……. 결국 기다려도 대답 없는 발포명령을 기다리던 이 777함은 달아나는 북의 경비정을 향해 뒤늦게 포 사격을 가하던 중에 북쪽 군사분계선을 지키는 북한 측 해안포로부터 역공을 받는 신세가 되고 만다. 그 과정은 이 소설 중에서도 특히 퇴함 편에 잘 드러나 있거니와 바다에서 청춘을 사르던 우리의 주인공 강철규 역시 이때 다른 여러 해군 병사들과 더불어 목숨을 잃고 만다.(퇴함 제2권 문학평론가 박덕규의 발문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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