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정보
라틴어 문장 수업

라틴어 문장 수업

저자
김동섭
출판사
RHK
출판일
2018-10-12
등록일
2019-01-25
파일포맷
EPUB
파일크기
50MB
공급사
웅진OPMS
지원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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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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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 속에는 한 민족이 수천 년 동안 걸어온 발자취가 고스란히 녹아 있다. 그런 까닭에 외국어를 배운다는 것은 그 민족의 역사, 문화, 신화, 생활 방식, 세계관 등을 배우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라틴어는 천 년 동안 번성한 로마 제국의 언어였다. 왕정에서 시작하여 공화정의 장년기를 보내고, 제정을 통해 전 유럽과 중동 그리고 이집트를 손아귀에 넣었던 로마의 모든 역사가 라틴어 속에 들어 있다. 라틴어 속에는 갈리아(프랑스), 히스파니아(스페인), 브리타니아(영국) 속주에 살던 속주민들의 생활상과 그들의 역사도 기록되어 있다. _p.5



고대 그리스인들은 시간을 미래를 향하여 직선 위에서 흘러가는 크로노스(Chronos)와 시간의 깊이를 나타내는 카이로스(Kairos)로 구분하여 생각했다. 크로노스는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물리적인 시간을 말하고, 카이로스는 특별한 의미가 부여된 시간을 말한다. 우리말로 구분한다면 크로노스는 ‘시간’이 될 것이고, 카이로스는 ‘시각’, 혹은 ‘때’가 될 것이다. 신화 속의 크로노스는 그 형태가 없거나, 간혹 수염이 긴 노인으로 표현된다. 하지만 제우스의 아버지인 크로노스(Cronos)와는 다른 신이다. 크로노스가 의미하는 시간이란 자연이 순환하는 시간, 즉 인간이 태어나서 죽기까지의 시간을 의미한다. _p.23



그렇다면 운만 있으면 인간의 운명은 행복해질 수 있을까? 르네상스 시대의 이탈리아 사상가인 마키아벨리는 인간이 성공하려면 포르투나 말고도 비르투(Virtu)도 있어야 한다고 역설한다. 마키아벨리가 말하는 비르투는 도덕적 ‘덕성’이 아니라 포르투나를 극복할 수 있는 힘이나, 자신의 의지를 통제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포르투나가 인간의 운명을 절반 정도만 지배하며, 나머지는 비르투에 의해서 결정된다고 주장했다. 쉽게 말해, 운만 좋다고 성공하는 것이 아니라 많은 노력과 자기 극복을 통하여 인간은 성공한다는 것이다. _pp.43~44



기원전 4세기경 사람인 다모클레스는 시칠리아의 독재자 디오니소스 왕의 신하였는데 그는 왕의 자리를 항상 부러워했다. 그런 눈치를 챈 왕은 다모클레스에게 자신을 대신하여 왕 노릇을 해보라고 권하였다. 다모클레스는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왕좌에 앉았다. 그런데 자리에 앉아 위를 쳐다보니 날카로운 검이 말총에 매달려 있었다. 그제야 그는 왕의 자리가 얼마나 위험하고 힘든 자리인지 깨달았다. 디오니소스 왕은 자신이 쓴 문학 작품이 어느 누구의 작품보다 뛰어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런 그의 오만함을 키케로는 신랄하게 비판하였는데, 그때 그가 했던 말이 바로 “누구나 자기 것이 아름답다”이다. _p.123



로마인들이 만든 법의 골격이 이후 유럽 각국의 모범이 된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할 수 있다. 첫 번째는 로마법의 명료성이다. 로마법에는 어떤 상징도 허용되지 않았으며 반복되거나 사족 같은 내용이 없었다. 두 번째는 로마법이 잔혹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모든 법률은 철저한 절차에 의해 집행되었으며, 사형도 예외일 수는 없었다. 자유민에게는 고문을 가할 수 없다는 원칙이 로마법의 출발점이었는데, 이 원칙을 다른 민족들이 실행에 옮기기까지는 수천 년이 걸렸다. _p.193



유일신을 섬긴 유대인들과는 달리 고대 로마인들이 실용적인 사상을 지닌 것은 다신교를 섬겼던 배경이 한몫했을 것이다. 로마인들에게 신이란 인생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지침서 정도였다고 할까? 성서에 보면 “인간은 빵으로만 살지 않고 하느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물질세계가 충만해지면 질수록 인간의 영혼은 점점 황폐해질 수 있다는 것을 경고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의 일상은 “충분한 돈이 있으면 빵뿐만 아니라 말씀까지 덤으로 가질 수 있다”라는 배금주의에 빠져 있는 것이 사실이다.

_pp.196~197



죽음에 대하여 우리는 모두 초심자이기에 웰다잉이 더욱 중요한 것이 아닐까? 죽음에는 연습이 없기 때문이다. 웰다잉의 진정한 가치는 편하게 죽는 것이 아니라 의미 있는 죽음을 맞이하는 준비가 아닐까? 고대 로마로 가보자. 많은 정복을 통해 제국에 영광을 안겨준 장군들에게 로마는 개선식을 베풀어주었다. 그런데 개선식의 후미에는 몇 명의 노예들이 “Memento mori”라고 외치며 행렬을 따라다녔다. “죽음을 기억하라”는 뜻의 이 경구는 모든 인간은 죽기 마련이고, 이승에서 누리는 부귀영화도 한낱 먼지와 같은 것이기 때문에 항상 죽음을 대비하고 있으라는 말이었다. 쉽게 말하자면 지금은 이 세상을 손아귀에 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영화라는 것도 부질없다는 말이다. _p.229



본래 죽음이라는 것은 우리 주위에 상존하고 있다. 아주 사소한 일로 생을 마감하는 사람들을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지 않은가? 이 세상에 올 때는 많은 사람들의 축복을 받으며 오지만, 이 세상을 떠날 때에는 아무도 자신의 죽음을 기억해주지 않는 경우도 많다. 그렇기에 몽테뉴는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죽음을 대비해야 한다고 역설하고 있다. 그는 신이 원할 때 언제라도 미련없이 세상을 떠날 수 있다고《수상록》에서 말하고 있다. 하지만 살아갈 날이 살아온 날보다 많다고 믿는 사람들에게 몽테뉴의 말은 공감을 덜 줄지 모른다. 그런 까닭에 많은 사람들이 회한을 가진 채 이 세상을 작별하는 것은 아닐까. _p.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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